강해·집회·특강
| 설교일2006.11.23 | 말씀요한계시록 6장12~17절 | 설교자석원태 원로목사 |
여섯째 인 : 큰 진노의 날(징조)① (계 6:12~17)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장면은 세상 끝날에 관한 교훈이다. 여기에 나타난 모든 종말적인 사건들은 우리 주님께서 말세에 대한 교훈을 하실 때 사용하신 어구들과 내용들이다(마 24장). 성경은 「진노의 큰 날」(계 6:17)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끝날을 의미하고 있다. 1. 자연계의 종말(천지의 변동, 계 6:12~14) 1) 큰 지진이 일어난다.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큰 지진이 나며」라고 했다. 아모스 선지자는 주님 오시는 날에는 땅이 진동할 것이라고 했다(암 8:8).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땅에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겔 38:19). 요엘 선지자는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욜 2:10).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했다(학 2:6). 마태복음 24장 7~8절에서 주님은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했다. 2) 해가 총담같이 검어질 것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라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해가 돋아도 어두워진다고 했다(사 13:10, 50:3). 아모스는 태양이 한낮에, 지구는 대낮에 어두워지리라고 했다(암 8:9). 주님께서도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마 24:29)라고 하셨다. 3) 달이 피같이 된다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온 달이 피같이 되며」라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달이 그 빛을 비추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3:10, 50:3). 요엘 선지자도 달이 핏빛으로 변하리라고 했다(욜 2:31). 예수님도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마 24:29)라고 했다. 4) 하늘의 별들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3절에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라고 했다. 마태복음 24장 29절에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끝날에 하늘의 만상들이 쇠잔하여질 것이라고 했다. 그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고 했다(사 34:4). 5) 하늘은 종이 축같이 말려 떠나간다. 요한계시록 6장 14절에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라고 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하늘을 진동시킬 것이라고 했다(사 34:4). 시편 성도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시 102:26)라고 했다. 베드로 사도는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 3:10)라고 했다. 6) 산과 바다의 섬들이 옮겨 버릴 것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4절에 「…각 산과 각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이 끝날을 예언하면서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렘 4:24)라고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대한 마지막 정리이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하여 이 지구를 파괴의 물결이 일어나버리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해와 달의 기능을 마비시킴으로 지구 위에 무시무시한 어두움으로 덮어버리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공간 세계의 별들의 궤도를 마비시킴으로 파국적인 혼돈상태를 일으키고 말겠다는 선언이다. 우주적인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말겠다는 선언이다. 말하자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정리하신다는 것이다(계 21:1). 그것은 새 하늘, 새 땅의 출현을 위함이다. 2. 인간계의 종말(계 6:15~16) 1) 어떤 종류의 인간들인가? (1) 땅의 임금들이다(계 6:15). 이는 권력과 명예 신봉주의자들이다. 왕권 지상주의자들이다. 저들은 지상에서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하나님을 도전하고, 교회를 잔해하였다. 이제 저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유는 새 하늘, 새 땅에는 불의의 통치자가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왕족들이 있다(계 6:15). 이들은 고급 관리들을 총망라한 말이 된다. 저들은 땅의 임금들의 그늘 밑에서 호화생활을 신봉하던 자들이다. 말하자면 귀족주의자들이다. 저들은 온갖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의 피를 빨고, 교회를 박해하며 전도자들을 멸시했다. (3) 장군들이 있다(계 6:15). 이들은 군대 고관들을 총칭한다. 성경에는 천부장이 있다(막6:21). 예수를 잡고(요 8:12), 십자가에 처형하고, 바울을 결박하여 옥에 가둔 자들이다(행 21:33). 저들은 당시 로마제국의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었다. 저들은 검과 몽치를 앞세우고 항상 예수를 도전하던 자들이다(마 26:47). 저들은 권력의 시녀들이요, 도구들이었다. 저들은 검을 사용하여 이 땅에 평화를 꽃피운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한 역사의 폭군들이요, 역사의 난동자, 무법자들이었다. 이제 저들에게는 그 운명적인 한 날이 오고 만다. 이유는 새 하늘, 새 땅에는 불의의 병기가 사용될 곳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4) 부자들이 있다(계 6:15). 이 사람들은 황금바알, 곧 배금주의자들이다.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약 2:6),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자칭 황금의 왕이 되었던 자들이다. 저들은 강포를 일삼은 자들이다. 날마다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던 육체주의자들이다.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운 육체의 즐거움을 삶의 낙으로 삼던 자들이었다. 천국에서는 배금주의자가 발붙일 곳이 없다. (5) 강한 자들이 있다(계 6:15). 이들은 육체적 힘이나 어떤 개인기가 탁월하여 땅에서 그의 위력을 과시하며 살던 자들이다. 저들은 땅에서 강포를 일삼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에게도 실오라기처럼 끊어지고, 그 행위가 불티같이 타버리는 한 날이 오고 만다고 하였다(사 1:31). (6) 각 종들이 있다(계 6:15). 이들은 노예와 농노들로서 권력주의자나 부자들의 하수인들이었다. 붙어사는 인간 기생충류들이었다. 맹목적인 삶으로 참 주인을 몰랐던 자들이다. 저들은 주 예수를 섬기지 않고, 사람들을 왕으로 섬긴 자들이다. 저들은 잘못된 충성을 한 자들이다. 실로 불행한 한평생을 보낸 자들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또 운명적인 종말 앞에서 새로운 고통을 맛보아야 할 자들이다. 저들이야말로 금세와 내세에서 불행한 자들이다. (7) 자주자(自主者, Every freemen)이다(계 6:15). 이들은 노예에서 해방받은 자들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이었다. 이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불행스럽게도 자기를 믿고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왕이 되어 살던 자들이었다. 지금 열거된 7종의 인간 무리들을 다시 대별하면 정치적 명예에 살던 권력층(왕, 왕족들, 장로들), 사회적 부의 권력층(부자들, 강한 자들), 그리고 서민 계급들(각 종들, 자주자)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해당되는 자들이다. 곧 두려워하는 자들, 불신자들, 흉악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로 이 세상주의자들이다.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태산처럼 믿고 하나님을 부인하던 자들이었다. 2) 인간들의 종말 (1) 저들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었다. 요한계시록 6장 15절에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라고 했다. 참 우습기 짝이 없는 도피 행각이다. 이것은 마치 에덴에서 아담이 범죄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사이로 도망가던 장면을 연상케 하고 있다(창 3:8). 죄의 충동은 숨는 것이다. 이사야는 진노의 끝날을 견디지 못한 인생은 굴과 바위 속으로 도망갈 것이라고 했다(사 2:10, 19). 그러나 저들의 도피는 불행스러웠다. 저들은 끝까지 하나님께로 피할 줄 몰랐다. 저들은 끝까지 이 세상 피조 세계의 것들을 붙잡고 넘어졌다. (2) 산과 바위에게 기도했다. 요한계시록 6장 16절에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했다. 누가복음 23장 30절에는 이 사실을 예언하기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저들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니 자폭을 요구한 셈이다. 저들은 끝까지 하나님과 어린양의 얼굴을 보기 싫어했다. 차라리 산과 바위에 깔려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과 어린양의 얼굴 앞에는 서기 싫다고 했다. 저들의 소원은 자폭이다. 이것이 불신앙자 곧 멸망 받을 자들의 완고함이다. (3)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요한계시록 6장 17절에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악인들은 심판 받는 끝날에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 참으로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다급하여 터진 탄식이요, 비명이다. 거룩하신 대주재 하나님을 대면하여 설 수 없는 절망적인 두려움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 이는 저들이 그처럼 미워하고, 싫어하고, 반대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너무 괴롭고 두려워서 터뜨리는 자포자기의 비명이다.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린 마지막 절망의 비명이다. 이제 갈 곳이 없는 최후의 코너에 몰려 산과 바위에게 구원 아니 자폭을 요구하는 비명이다. 참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는 최후이다. 그래서 산과 바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혀 구원의 여망이 없는 절망적인 최후였다. 누가 그 앞에 서리요! 3. 어린양이 진노하는 날이다(계 6:16~17). 요한계시록 6장 16절에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했다. 어린양의 진노란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 이유는 어린양은 희생과 온유와 겸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말은 자주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만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요한계시록 11장 18절에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라고 했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9절에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5장 7절에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6장 1절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6장 19절에는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9장 15절에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 어린양이 진노하신다는 말은 보기 힘들다. 이사야 53장 7절에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으로 나타났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되고 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는 온유하고 겸손한 표본으로 나타났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묘사됐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표현했다. 다만 요한계시록 5장 5절의 경우 어린양이 유다 지파의 사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어린양이 진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계 6:16). 이 어린양의 진노를 ‘진노의 큰 날’로 표현했다. 이것이야말로 큰일이요, 야단이요, 놀랄 일이다. 노하지 않는 양이 노했으니 큰일이다. 진노할 수 없는 양이 진노했으니 실로 두려운 진노요, 큰 진노요, 막을 길 없는 진노요, 마지막 진노이다. 그분이 진노하면 막을 수 없고, 피할 수도 없고, 연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세상 끝날이다. 심판의 날이다. 그 진노는 악도들에겐 형벌을 갖고 오는 진노이다. 그 결과 저들에게는 슬피 울고 이를 가는 영원한 멸망이 오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이 어린양의 진노가 사랑의 진노이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어린양의 진노는 파괴의 진노가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을 출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진노는 그 사랑하는 자를 구원키 위하여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끝장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신자들에게는 종말의 선언이요, 신자들에게는 영광 세계의 시작이다. 그 진노는 불신자에게 떨어지는 멸망의 포고이다. 그러나 반면에 그 진노는 구원받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사인(Sign)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끝날은 성도들에겐 흉작이나 절망이 아니라 행복이요, 풍작이요, 영생이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어린양의 진노의 양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린양의 십자가의 죽음(희생)은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는데 멸망받을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 어린양의 사랑과 온유와 희생은 신자들에게는 빛이요, 생명이다. 그러나 멸망받을 불신자들에게는 오히려 넘어지게 되는 걸림돌이 된다. 어린양의 진노는 신자들에게는 오히려 승리의 소리요, 불신자들에게는 저주와 멸망이다. 범죄한 아담에게는 자신을 찾아오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낯과 음성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들렸다. 참으로 어린양의 진노는 마지막 진노요, 불가항력적 진노이다. 일곱째 인은 큰 진노의 날 곧 종말에 대한 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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